<견씨족보>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었다: 대용 토가족, 백족은 “습관이 무당을 믿고 신에게 소원을 빌며, 우각을 불고, 북을 울린다. 웃고 떠들기 좋아하는 자가 많으며, 글을 아는 자가 아주 적다. 그러므로 자지에서는 : 모화계 외, 갑자를 모른다고 하였다. ”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소원을 빌며, 묘회에 나가는 것은 토가족와 백족 사람들의 성대한 명절이였다.
구지의 기재에 따르면 “예절을 아는 집에서는 본주를 정침에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가족묘에는 반드시 본주 신상을 모시고 있으며, 본주 생신이면 꼭 묘회를 연다. 역사 명인의 기일도 묘회일로 될 수 있다. 본주 생신일 혹은 기일이 다름에 따라 묘회도 다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월부터 동짓달까지 달마다 묘회가 열리는 특수한 문화현상을 구성하였다. 예하면 정월 15일이 곡씨 조상 경영제독소적궁소무장군 영화의 생일이기에, 그 후대는 매년 이날에 출생지 요평에서 묘회를 연다. 정월 9일은 본주 왕명개의 생일이기에, 왕씨들은 부용교 암문담을 묘회 장소로 정하였다. 묘회에 나가는 것은 열정적이고 정중한 일이다.